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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25 23rd, Mar, 2008 - Feel The Rhythm(5)
마음 한 구석에서 이젠 그만 하라고 속삭일 때...
어른들이 왜 굳이 그런 일을 하냐고 채근할 때...
흘러가는 시간이 이건 네가 할 일이 아니라 부추길 때...
나를 정신차리게 하는 너의 다그침이 들려온다.
JUST DO IT.
어른들이 왜 굳이 그런 일을 하냐고 채근할 때...
흘러가는 시간이 이건 네가 할 일이 아니라 부추길 때...
나를 정신차리게 하는 너의 다그침이 들려온다.
JUST DO IT.
이야기 하나>
세탁소에 신발 두 켤레를 맡겼다. 오른쪽 껌둥이 아디다스는 작년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던 어느 날 - 아마 비오는 종로 거리를 찍던 날? - 쫄딱 빗물에 적신 뒤 한동안 세탁조차 안 하다가 간신히 손세탁을 하여 보관해오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비냄새가 가시지 않아 한동안 신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외출하는 김에 이 두 녀석들을 제대로 씻겨주기로 했다. 내가 씻겨주지 않는 거니까 깨끗이 잘 되겠지, 뭐.
합계 7000원. 후불로 계산하겠다고 해놓고 길을 떠났다.
이야기 둘>
지겹도록 괴롭히던 귀차니즘을 드디어 물리쳤다. 머리털을 손질했다.
이날은 남자 헤어디자이너가 내 머리를 손질해주었다. 좀 변태적인 생각일테지만, 왜 남자가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것에 여자들이 그렇게 기뻐하는지 알 것 같다. 일괄된 작업복이 아니라, 홀로(아마도?)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내 머리를 손질해 준 형님. 아마 여자친구가 있다면, 저 손끝에 반해서일 듯.
근데, 왜 나는 매일 갈 때 마다 지정된 헤어디자이너가 자리에 없는 거지? 맨 처음 내 헤어디자이너였던 그 여자분은 진작 그만 두셨고, 이 후로도 헤어디자이너가 고정이 안 되네. 쩝!
그 그만뒀던 분, 나름 이상형이었는데. (퍼퍼퍽!!)
이야기 셋>
예고를 대략 서너번은 한 것 같은데, 드디어 자전거를 질렀다! 접이식 미니벨로! 잇힝~
창동 이마트로 갔다가 자전거매장을 지키는 사람이 없길래, 여행삼아 월계동 이마트까지 건너갔다. 사이클동호회 복장의 형님께서 매장을 맡고 있었다. 13만원짜리 "내파란세이버"를 3개월 할부로 구입. 아뿔싸! 무이자인지도 안 물어보고 덜컥 할부를 외쳤네! 이런 바보!
이미 매장담당형님께는 자전거초보라고 이야기 했겠다, 그 형님이 냅다 "한 번 타봐요"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나도 별 생각 하지 않고 열심히 자전거를 괴롭혔다. "힘 빼요, 힘 빼!"라고 외치는 형님. 그리고 자전거 바퀴에 의지해 내 옆을 유유히 지나는 아줌마와 꼬마아가씨 그리고 진짜 아가씨들. 한마디로 "부럽다!"
월계동에서 삼양동까지 버스로 자전거를 이동시키는 것이 힘들긴 힘들더라. 접이식이라고 해도. 어쨌든 집에 도착한 나는 아파트 공터에서 다시 한 번 자전거를 괴롭혔다. 휴우~ 아직도 페달을 밟을라 치면 자전거가 어림없이 기울어져 버린다. 내 몸의 밸런스가 정말 개판이긴 한가봐.
그래도 정말 어깨에 힘을 빼니까 슬슬 굴러가는 느낌이 들더라. 하지만, 5미터를 굴리면 그나마 잘 굴리는 것이라 할 정도로 첫 날의 연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니, 실망스럽다고 하면 안 되지. 처음 시작하는 주제에 무슨 뚜르드프랑스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휴일이 되면 열심히 자전거를 끌고 연습해야지. 아, 휴일 전 날에 일이 끝나면 역시 살살 굴려볼까.
자투리 이야기>
제기동새마을금고 버스정류장에서.
그냥 저런 곳에서 혼자 캐청승을 떨며 맥주를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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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슈터
2008/07/16 11:25
나도 파란색이 마음에 들어서 저걸 질렀지.
한 번도 자전거를 안 탔다가 나이 먹어서 자전거를 타려니까 이게 참 힘들더라고.ㅋㅋ
별이는 자전거 잘 타니? 가끔 학원까지 자전거로 왕복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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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GE빌딩에 있는 자바시티에서 한 시간 넘게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그곳에서 그 책의 절반 정도는 읽은 것 같다. 물론, 카페에서 책을 읽으려면 절대 공짜로 앉아있다가 나갈 생각을 하면 안된다. 그래서 쿠키앤크림 자발란치 한 잔을 곁들이기로 했다. 잔을 다 비워도 절대로 컵을 반환해서는 안 된다. 그 컵은 "내가 현재 그 자리를 임대하고 있오. 그 자리를 떠날 때 까지는 자리를 넘보지 마시오"란 뜻을 가진, 일종의 권리와도 같은 거니까.
샌드위치라도 같이 시킬 것을 그랬나보다. 배가 살짝 고파온다. 점심께 노원역에서 영화를 본 뒤 냉면 한 그릇을 해치운 것이 그 날의 유일한 식사였다. 하지만, 소스와 빵가루를 손에 묻혀가며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책을 읽는 데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소스와 빵가루를 묻히면 안 되는 책이기도 했다. 빌린 책이었으므로. 샌드위치...... 첫 직장에서는 그렇게도 만들기 지겨워했던, 그것에 발목을 잡혀서 더 배울 것을 못 배우고 있다는 관념 때문에 나를 직장에서 나가게 만들었던 그 녀석. 지금 직장에서는 차라리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야채를 고르는 눈은 없지만, 재료만 공수해주면 칼질이든 삽질이든 내가 맡겠노라고 말하겠다는 것이다.
짬이 나면 동료직원들과 매일같이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바로 "샌드위치를 왜 안 하냐"는 것이다. 자바시티와 비교하면 서브메뉴의 종류도 형편없이 적다. 어쩌면 샌드위치 한 종류가 빠진 것 밖에 없다지만, 내 직장의 단골들 중에 커피단골은 있어도 빵이나 케잌 단골은 없다는 것은 전략을 수정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본사로의 언로(言路)가 끊어졌다는 이유로 결국 본사로는 더 이상 샌드위치를 시작하자는 제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내 직장이라지만, 정말이지 "돈을 벌 생각만 있지 장사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렇다면 자네가 이야기해보지 그래? 나도 용기 없기는 똑같은 걸, 뭐. 고치고픈 것도 많고 싸우고픈 것도 많지만 그것을 한 번도 제안 등으로 이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어차피 안 들을 게 뻔한데 뭐하러 이야기하냐"는 생각이 박혀버렸다. 그렇게 지레짐작으로 포기해버렸다. 매사에 그렇게 포기해버린 게 한 둘이 아닌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돌대가리.
"싫다고 할텐데 뭐"하는 생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 한 번 안하고 지금까지 몇 년을 살았냐고. 실제로 그런 대답을 들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차라리 그런 대답을 들으면 속이나마 시원할 것을 알면서. 아직도 나는 거절당하는 것에 참 약하다. 하필이면 사소한 일에 목숨거는 성격이 더해져서 "무시당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얽혀버렸으니. 그래서, 특히 여자들과는 어느 선 이상으로는 친해진 적이 없다. 차단당할 것 같은 공포 때문에.
그렇게 쉬는 날이 되면 혼자 카페를 찾아 책을 읽는다. 사실은 사람과의 수다로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훨씬 합리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합리적이라는 기준 자체가 인간관계에서 만큼은 퇴색해질 때가 많다. 사실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뽑아낼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내 결심을 이끌어낼 말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방 청소를 시작했다. 내 방은 한 개가 아니다. 0.5개와 0.5개의 조합일 뿐이다. 쉽게 말해, "자는 곳"과 "노는 곳"이 나뉘어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회선비용을 아끼겠다고 이런 편법을 동원하는 바람에 자는 곳과 노는 곳이 하나가 되어야 할 방이 분리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늘 만큼은 다소 힘을 덜 쓰게 되었다. 방 청소를 하면서 "내 구역"에 해당되는 곳만 치웠기 때문이다. 나머지 "공통구역"이라 지정된 곳은 언젠가는 치우게 되겠지.
방 청소가 끝난 뒤에 느끼는 허리통증과 개운함이란 무얼까. 허리통증이야 작년 말에 다친 전력이 있다보니 스트레칭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경보등이 울리니 어쩔 수 없고. 개운함은...... "보거스는 내친구" 세트장을 해체시켰다는 데에서 오는 것이랄까? 이제 자기 전에 샤워만 하면 끝나겠구나. 아, 아직 해야 될 게 있구나. 완전히 버리기로 한 책들과 종이들을 폐기처분해야지. 왜 아직도 내 서랍에 대학 리포트가 남아있지? "언젠가 보게 될 날이 올거야"는 허튼 생각 때문에?
아마도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습관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버리는 것을 참 못한다. 버리기를 못하신 어머니는 유통기한이 5년이나 지난 리쿠어를 아직도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그걸 보관하겠다고 냉장고를 또 사셨다. 그 돈으로 차라리 인터넷 회선을 따로 놓던가. 버리기를 못하는 나는 다시는 읽지 않을 책과 대학 리포트 등을 책장에 쳐박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정말로 버려야 하는 데 버리지 못한 것이 있구나. 사람들과의 사소한 인연에 대한 집착. 제발 버리자.
더 이상 글을 이을 무언가가 남지 않았다. 마지막은 지금까지 썼던 것들과 관계없이 맺어볼까.
아직은 사랑의 힘보다 사람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더 많이 만나고 싶다.
- 청담동 GE빌딩 자바시티에서, 2008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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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죽희.
2008/07/01 00:05
가끔씩은 혼자 카페가서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서 죽치곤 하지만 요즘은 바빠서 그러질 못 하네요. ㅎㅎ
어떻게 보면 그럴때가 책은 많이 읽었었는데..
쓰레기통에서 분리수거를 위해 깡통과 일회용 컵을 뒤지던 중, 어떤 메모가 내 손에 잡혔다. 왠지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보여서 나는 그 쪽지를 내 가방에 넣어버렸다. 종이에 스며든 쓰레기통 속 오물냄새는 내 코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밤이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 쪽지의 글을 확인한다.
길은 너무 멀었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가슴 깊은데까지 한기가 느껴진다.
욕심은 여기까지인거 같다.
( ) 욕심을 내면 죄가될것같은 두려움.
무엇을 위하는 마음이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
욕심에 눈이멀어 잘못하고 있는것인지 모른다.
똑바로 제대로 봐야겠다.
누구의 탓도 원망도 아니다.
나의 시간 속에 내 모습을 똑바로 두면된다.
차라리 잘된일이다.
혼자라는 것은 잘된일이다.
2006. 10. 3. ___에간 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갈길은 멀다.
시간은 빠르다.
선택하고 집중하자.
운명을 받아들이자.
감정에 치우치말고 차가운 머리로
뜨거운 가슴으로 판단하고 결단하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반듯하게 길 위에 있자.
탑을 쌓자.
2006. 10. 4. __과 통화하고 ......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고, 이제 눈물흘릴 일이 있을까.
슬픔이 깊을수록, 아픔이 많을수록 알수없는 힘이생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스스로를 얼마나 믿는가.
(실)수와 오류를 줄이고 지혜롭게 시간을 쌓는것이
( )하다. 조용히 명상하고 독서하자.
( )은 허할뿐. 진심과 진실을 담아서 세상을 대하자.
사사로운 일에 시간과 마음을 줄이고,
세상을 바꾸는데 정성을 다해야겠다.
후회할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할 일이다.
겸손과 배려. 학습하는데 열중.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고,
가슴아픈 일은 이제 그만두자.
2007. 2. 28. 착하다는 소리들은 날.
내가 불혹의 나이가 되면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베풀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서른을 앞둔 철없는 초보인생이며, 가르침을 베풀기 보다는 가르침을 받는 데 익숙하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누군가를 가리키려" 들고 있다.
나의 불혹은...... 과연 어떻게 찾아올까?
그 길에 '바리스타'라는 이정표가 계속해서 남아있기를 기원하며.
자투리 : 카스레몬을 마시며 이 글을 썼음. 꽤 맛있구나. *-_-*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가슴 깊은데까지 한기가 느껴진다.
욕심은 여기까지인거 같다.
( ) 욕심을 내면 죄가될것같은 두려움.
무엇을 위하는 마음이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
욕심에 눈이멀어 잘못하고 있는것인지 모른다.
똑바로 제대로 봐야겠다.
누구의 탓도 원망도 아니다.
나의 시간 속에 내 모습을 똑바로 두면된다.
차라리 잘된일이다.
혼자라는 것은 잘된일이다.
2006. 10. 3. ___에간 날.
갈길은 멀다.
시간은 빠르다.
선택하고 집중하자.
운명을 받아들이자.
감정에 치우치말고 차가운 머리로
뜨거운 가슴으로 판단하고 결단하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반듯하게 길 위에 있자.
탑을 쌓자.
2006. 10. 4. __과 통화하고 ......
슬픔이 깊을수록, 아픔이 많을수록 알수없는 힘이생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스스로를 얼마나 믿는가.
(실)수와 오류를 줄이고 지혜롭게 시간을 쌓는것이
( )하다. 조용히 명상하고 독서하자.
( )은 허할뿐. 진심과 진실을 담아서 세상을 대하자.
사사로운 일에 시간과 마음을 줄이고,
세상을 바꾸는데 정성을 다해야겠다.
후회할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할 일이다.
겸손과 배려. 학습하는데 열중.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고,
가슴아픈 일은 이제 그만두자.
2007. 2. 28. 착하다는 소리들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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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혹의 나이가 되면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베풀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서른을 앞둔 철없는 초보인생이며, 가르침을 베풀기 보다는 가르침을 받는 데 익숙하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누군가를 가리키려" 들고 있다.
나의 불혹은...... 과연 어떻게 찾아올까?
그 길에 '바리스타'라는 이정표가 계속해서 남아있기를 기원하며.
자투리 : 카스레몬을 마시며 이 글을 썼음. 꽤 맛있구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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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슈터
2008/06/19 01:18
아마도 글을 쓰신 분께서 더 이상 "감성에 묻히지 않겠어"하는 결심으로 그 쪽지를 버린 것 같아요. 그 분으로서는 버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겠죠.
생각해 보니, 저도 언젠가는 제 블로그에 남겼던 글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태워버릴 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의 제 블로그들도 그랬고 말이죠.
과연 저처럼 그 쪽지와 글들을 모으는 사람이 있을까요? 막연하지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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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슈터
2008/06/19 01:20
어서 오세요~
사실 이 글을 빼고 나머지 글들은 꽤나 까칠한 내용이 많아요. "어머, 저 인간이 저랬단 말야?!"하면서 놀랄 만한 부분도 많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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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區)의 행정을 홍보하는 게시판에 붙은 이 포스터. 구청에서 앞장서서 이것을 붙였을 리는 없다. 보이지 않는 순간에 누군가가 급히 - 아니면 여유롭게 - 청테이프를 뜯어내어 붙인 뒤에 사라진 것 같다. 포스터는 "모든 것을 멈추고, 촛불을 들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노동시간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 아니, 노동에서 벗어난 휴일이라고 해도 이 집회에 참석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100만 대행진을 위해 내 노동을 - 정확히 말해 내 임금을 - 포기할 정도의 강심장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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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인사동으로 향하던 151번 시내버스가 종각역사거리에서 경찰의 통제를 받으며 종로로 빠져나가려 하였다. 버스기사님은 종로2가에서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 교보문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종로1가는 시민들이 "접수"한지 오래인 것 같았으며, 벤치 위에는 주인이 떠나간 양초가 아직도 불을 밝히고 있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며 "광야에서"를 목놓아 부르고 있었고, "이명박은 물러가라" "어청수는 물러가라"는 구호가 귀에 맴돌았다. 아예 돗자리를 들고 나와 간식을 먹으며 촛불을 밝히는 가족도 있었다. 그날, 내가 본 촛불문화제 - 나는 이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 - 는 문화제를 뛰어넘어 '축제'가 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며 입맛을 다셨다. 또다시 경찰과 시민이 충돌한 것이다. "전선"에서는 아직도 전투가 한창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후방에서 여유를 즐기며 "광야에서"를 불렀던 것이다. 후방에서처럼 촛불문화제가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적"의 도발은 무식하면서도 가끔은 효과적이기도 하였다. 그에 대한 소식들은 오히려 여러분이 훨씬 잘 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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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우리가 모든 기계를 멈추게 하였노라!" 상당히 낡은 구호이다. 그 구호가 포스터에서 되살아난 느낌이 든다. 물론 모든 기계를 멈추게 할 정도의 무식함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카페의 에스프레소머신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투쟁을 위하여 기계를 멈추게 하였다면, 누군가는 생존을 위하여 기계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의 뜻을 분명히 하겠소.
내 블로그에는 촛불이 켜져 있소.
내 심장에도 촛불이 켜져 있소.
나는 당신들도 켜놓은 촛불을 지지하오.
다만 자리에 같이 하지 못함을 너무 책하지 않길 바라오.
- 집 앞 어느 게시판에서, 2008년 6월 8일.
2003년의 늦가을을 기억하다.
나름 바쁘게 보냈으며 또한 성의를 갖고 보낸 때를 떠올려보니, 2003년 늦가을부터 2004년 2월까지, 그러니까 스물 세살의 늦가을부터 만 스물 세 살의 늦겨울 까지인 것 같다. 창동농협물류센터의 가공팀 아르바이트. 저녁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철야노동. 월 95만원이라는 나쁘지 않은 수입. 굉장히 친하지는 않았지만 큰 트러블도 만들지 않았던, 나름 나쁘지 않았던 인물관계. 휴일이면 스타리그 구경하며 나름의 망중한을 알차게 보내던 것이 그 때였다.
1년 정도 학교를 쉬면서 돈을 벌까 생각해봤다. 그것을 뛰어 넘어 자퇴할 것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나를 말리고 나섰다. 대학은 졸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리고 연일 계속된 철야노동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내 몸을 내가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나는 2004년 3월,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만약, 1년을 쉬어 돈을 조금 모은 뒤에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면 지금 28인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군복무(2001~2003) 이후의 학교생활은 이전의 학교생활과 달리 재미도 있었고, 사람사귀는 것에도 겨우내 적응하는 시기여서 나름 보람도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한 후의 현재의 내 생활은 스물 셋의 예전에 비해 좋은 것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다.
월급은 60만원 선에서 묶여있으며, 승진의 기회를 한 번 놓친 뒤로는 영원히 아르바이트로 묶여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차라리 퇴직을 해서 사촌형의 사업에 말단으로 들어가는 편이 돈은 잘 벌릴 것 같다.
돈을 위해서라면 바리스타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도 포기할 수도 있다.
돈...... 부모님이 언제나 나에게 압박하는 것이 형편없는 월급과 그에 대한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데에 대한 불만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한 번도 부모님에게 용돈 한 번 준 적이 없다는 푸념. 그래서 한 번은 내가 "나한테 필요한 게 돈 밖에 없어?"하고 시비를 걸어버리기도 했다. 당신들은 나보다 수입도 훨씬 많으면서.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능력의 척도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의 내 능력의 값어치는 60만원 대. 스물 세 살 때의 값어치가 95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수준은 참으로 형편없다.
그래서 스물 셋이었던 그 때의 선택이 후회로 남는다. 돈이 능력의 척도라고 한다면, 그리고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능력 그 자체라고 한다면 나는 그 능력을 좀 더 길게 발휘할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 특히 부모님에게 -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학력사회의 노예는 아니었다.
2003년의 늦가을에 대한 추억은 이제 그만.
2008년의 나는 능력치는 떨어졌어도 능력 자체는 남아있다.
나름 바쁘게 보냈으며 또한 성의를 갖고 보낸 때를 떠올려보니, 2003년 늦가을부터 2004년 2월까지, 그러니까 스물 세살의 늦가을부터 만 스물 세 살의 늦겨울 까지인 것 같다. 창동농협물류센터의 가공팀 아르바이트. 저녁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철야노동. 월 95만원이라는 나쁘지 않은 수입. 굉장히 친하지는 않았지만 큰 트러블도 만들지 않았던, 나름 나쁘지 않았던 인물관계. 휴일이면 스타리그 구경하며 나름의 망중한을 알차게 보내던 것이 그 때였다.
1년 정도 학교를 쉬면서 돈을 벌까 생각해봤다. 그것을 뛰어 넘어 자퇴할 것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나를 말리고 나섰다. 대학은 졸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리고 연일 계속된 철야노동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내 몸을 내가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나는 2004년 3월,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만약, 1년을 쉬어 돈을 조금 모은 뒤에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면 지금 28인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군복무(2001~2003) 이후의 학교생활은 이전의 학교생활과 달리 재미도 있었고, 사람사귀는 것에도 겨우내 적응하는 시기여서 나름 보람도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한 후의 현재의 내 생활은 스물 셋의 예전에 비해 좋은 것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다.
월급은 60만원 선에서 묶여있으며, 승진의 기회를 한 번 놓친 뒤로는 영원히 아르바이트로 묶여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차라리 퇴직을 해서 사촌형의 사업에 말단으로 들어가는 편이 돈은 잘 벌릴 것 같다.
돈을 위해서라면 바리스타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도 포기할 수도 있다.
돈...... 부모님이 언제나 나에게 압박하는 것이 형편없는 월급과 그에 대한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데에 대한 불만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한 번도 부모님에게 용돈 한 번 준 적이 없다는 푸념. 그래서 한 번은 내가 "나한테 필요한 게 돈 밖에 없어?"하고 시비를 걸어버리기도 했다. 당신들은 나보다 수입도 훨씬 많으면서.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능력의 척도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의 내 능력의 값어치는 60만원 대. 스물 세 살 때의 값어치가 95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수준은 참으로 형편없다.
그래서 스물 셋이었던 그 때의 선택이 후회로 남는다. 돈이 능력의 척도라고 한다면, 그리고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능력 그 자체라고 한다면 나는 그 능력을 좀 더 길게 발휘할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 특히 부모님에게 -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학력사회의 노예는 아니었다.
2003년의 늦가을에 대한 추억은 이제 그만.
2008년의 나는 능력치는 떨어졌어도 능력 자체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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